항암제 누출사고 방치한 병원 책임 인정…전주지법 “손해배상하라”

유방암 환자 항암치료 중 일혈 발생…해독제 투여·흡인 등 조치 없어
피부 괴사·관절 운동 제한으로 영구장해…과실상계 주장 기각
재판부 “사전 점검·사후 대응 미흡…환자 피해 키운 결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이 항암치료 도중 발생한 항암제 누출(일혈·extravasation) 사고와 관련해 병원의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학교법인 I가 운영하는 J병원이 환자 A씨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지난달 22일 판결했다(2022가단5*322). 이번 판결의 핵심은 누출 사고 이후 의료진의 후속 조치가 부족해 환자의 상해가 확대됐다는 점이다.

A씨는 2021년 1월 J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고 좌측유방 부분절제술 및 겨드랑이 림프절 절제술을 받은 뒤, 같은 해 2월부터 7월까지 독소루비신 항암제를 정맥으로 총 8차례 투여받았다.


그러나 3월, 우측 손등에 카테터를 삽입해 항암제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약물이 혈관 밖으로 새어나오는 사고가 발생했다. 주사 부위의 극심한 통증과 작열감을 호소한 A씨는 곧바로 투여를 중단했으나, 의료진은 연고 도포와 냉찜질 외에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손등 조직 괴사가 진행됐고, 손목·손가락 관절이 굳어 노동능력상실률 18%에 해당하는 영구장해를 입게 됐다.

A씨 측은 간호사가 생리식염수로 정맥 개통성을 확인하지 않고 동일 부위에 주사바늘을 재삽입한 뒤 독소루비신을 곧바로 투여한 것이 사고 원인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일혈이 발생했음에도 약물 흡인이나 해독제 투여 같은 필수 조치가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병원 측은 “혈액 역류를 확인한 후 투여를 시작했고, 이후 연고 도포·손 운동 권고·피판술 안내 등 적절한 조치를 했으나 환자가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독소루비신이 강력한 조직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발포제 항암제임에도 불구하고, 단순 혈액 역류 확인만으로 안전성을 확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의무기록에는 약 30cc의 일혈이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었지만, 남은 약물을 흡인하거나 덱스라족산 같은 해독제를 투여한 흔적은 없었다. 더 나아가 다른 병원에서라도 추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하지 않은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재판부는 이 같은 미흡한 대응이 약물이 조직에 잔류하게 했고, 결과적으로 피부 괴사와 운동 장애로 이어졌다고 결론 내렸다.

또한 병원 측의 과실상계 주장은 배척됐다. 재판부는 A씨가 연고 도포를 소홀히 했거나 손 운동을 게을리했으며 피판술을 거부했다는 주장을 입증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손해배상액은 향후 필요할 반흔절제술 및 식피술 비용과 위자료를 합산해 산정됐다.

이번 판결은 항암제 투여 과정에서 사전 점검과 사고 발생 후의 신속·적절한 대응이 환자의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재판부는 특히 일혈 발생 이후의 조치 여부가 환자 안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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