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 진료보조 범위 놓고 의료현장 혼선 지속…법적 판단도 엇갈려

침습적 시술은 대부분 “무면허 행위”…“의사 지도” 해석에도 온도차
방사선 촬영 업무도 논란…법원 판결 따라 인정 여부 달라져
헌법소원 기각됐지만 직역 간 충돌 여전…“법적 명확성 시급”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 범위를 둘러싼 혼란이 의료현장과 법정에서 계속되고 있다. 간호법과 판례가 진료보조의 개념과 한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면서, 의료인 직역 간 갈등과 혼선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행 간호법 제15조에 따르면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의 업무를 보조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 아래 간호 및 진료보조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어디까지가 ‘진료보조’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은 부족하다.

의료현장에서는 주사, 채혈, 내진, 방사선 촬영 등 일선 업무를 간호조무사가 맡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이들 행위가 법적으로 허용되는지 여부는 매번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법원 “침습적 시술은 진료보조 아냐”…대면진료 없는 단독행위 대부분 불인정


대표적인 사례로는 간호조무사가 임산부에게 의사 지시 없이 무통주사와 수액, 내진을 시행한 사건이 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2011년 “의사가 직접 진찰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시행한 행위는 진료보조로 볼 수 없다”며 무면허 의료행위로 판시했다.

또한 부산지법은 2019년 간호조무사가 의사 부재 중 채혈을 시행한 사건에서 “채혈은 고도의 숙련도를 요하는 의료행위”라며 “의사가 대면하지 않은 채 지시만 한 상황에서는 진료보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지난해, 간호조무사가 바늘을 이용해 환자 신체에 침습한 피주머니관 재고정 행위를 전화 지시만 받고 단독으로 시행한 사건에서 “진료보조로 볼 수 없다”며 무면허로 최종 판단했다.

“항상 입회는 불필요”…일반적 지도·감독 인정한 판례도 존재


다만, 법원은 진료보조 행위에 대해 의사의 ‘현장 입회’가 반드시 요구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2003년 대법원은 “모든 행위에 의사가 항상 입회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경우에 따라 일반적 감독만으로 충분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침습성, 환자 상태, 행위의 위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무조건적 위임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은 유지되고 있다.

방사선 촬영도 논란…“의사 지도 있었다면 가능” 판결 나와


최근 논란이 이어지는 또 다른 분야는 방사선 촬영 업무다. 간호사 업무에는 방사선사 등 의료기사 업무가 원칙적으로 제외돼 있지만, 간호조무사의 경우 의원급 의료기관에 한해 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보조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적용된다.

서울행정법원은 간호조무사가 콘빔 CT(CBCT) 촬영을 1년간 수행한 데 대해 “의사의 지도하에 이뤄졌고, 이는 진료보조 범위에 해당한다”며 보건복지부의 자격정지 처분을 취소했다. 항소심도 1심 판단을 유지하며 간호조무사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

반면, 창원지법은 씨암(C-arm) 장치 촬영 관련 사건에서 간호조무사가 실질적으로 방사선 촬영을 주도한 점을 들어 의료기사법 위반으로 간호조무사와 의사 모두에 벌금형을 선고했다.

헌재 “직역 간 위계 명확”…간호사 헌법소원은 각하


간호조무사와 간호사 간 직역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일부 간호사들은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 인정이 간호사의 취업 기회와 처우에 악영향을 준다며 지난 2020년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헌법재판소는 “업무 범위가 간호사보다 명백히 좁게 설정돼 있다”며 올해 1월 각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간호조무사를 간호사와 동일하게 취급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위헌으로 보기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전망은


간호조무사의 진료보조 범위를 둘러싼 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같이 모호한 법령과 해석이 혼재된 상황에서는, 의료기관마다 업무 분장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는 환자 안전과 의료의 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각 직역 간 업무 범위와 책임에 대해 정밀하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환자의 안전과 권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에서, 법적·제도적 정비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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