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늘렸지만 예산·시설은 제자리… ‘트리플링’ 현실화에 교육 현장 혼란

국립의대 신축 전면 중단… 9개교 모두 공사 착수 못 해
내년 세 학년 동시 수업 불가피… 교육의 질 우려 확산
의료계 "정책 추진은 빠른데 교육 준비는 뒷전" 비판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에 따라 추진되던 국립의대 시설 확충 계획이 예산 부족과 절차 지연 속에 사실상 전면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 결과, 내년부터는 세 개 학년이 동시에 강의를 듣는 ‘트리플링’ 상황이 현실화될 전망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18일 교육부는 전국 국립의대 9개교의 21개 건물에 대한 신축 및 증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실제 공사에 착수한 대학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는 올해 1월 국토교통부에 신축 공사 기본계획을 제출하며 '설계·시공 일괄입찰(턴키)' 방식으로 빠른 진행을 예고했으나, 국토부는 이를 일반 공사 방식으로 변경하며 계획은 좌초됐다.

특히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의 경우 총 500억 원 규모의 강의동 증축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에 포함돼 KDI 검토까지 완료됐지만, 의대 증원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이밖에 9개교 12개 건물에 대한 리모델링 계획도 공간 재배치 문제와 대학별 논의 지연 등으로 인해 전혀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교육 질 확보를 위해 약 6조 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2025년 예산안에서는 관련 예산이 단 4000억 원 증액되는 데 그쳤다. 그중 국립대 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은 1432억 원에 불과하며, 지난해 12월까지의 예산 집행 현황조차 공개되지 않아 계획의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

실제로 지난해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증원 계획에 대해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고, 교육 여건 마련도 미흡하다”며 실패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당시 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37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예산 배정 및 집행 현황 공개를 요구하는 공문을 발송하며 강하게 대응했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의 의과대학들은 이번 학기 종료 시점에 맞춰 유급 및 제적 대상자에 대한 행정 처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2024, 2025, 2026학번이 모두 동시에 수업을 듣는 ‘트리플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대 교수는 “총장들이 기존 정원의 두세 배까지도 문제없다고 장담했지만, 지금은 제대로 된 강의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라며 “이미 ‘더블링’으로 교육의 질이 무너지고 있는데, 내년 ‘트리플링’은 상상 이상의 혼란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정책은 졸속으로 추진됐고,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과 교육 현장에 전가됐다”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준비 없는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의학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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