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진료비 증가세 둔화…의정갈등 여파에 5년 만에 최저 수준 기록

상급종합병원은 진료비 감소세…의원·약국도 코로나 이후 두 번째로 낮아
공급자단체 “수가 협상 밴드 대폭 확대해야”…정부는 건보재정 부담 고심
SGR모형 속 순수 진료비 기준 놓고 해석차…밴드 증액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의료기관들의 지난해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 증가율이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올해 수가협상에서도 추가 재정(밴드) 확대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의정갈등의 직접적인 여파로 병원급 이상 기관의 진료비 감소까지 나타나면서, 의료계는 정부에 “이례적인 상황에는 이례적인 결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의료기관의 건강보험 급여 진료비 총액은 116조 2,509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증가율은 3.4%로, 코로나19 충격이 컸던 2020년(0.6%)을 제외하면 최근 5년간 가장 낮은 수치다. 2021~2023년 사이 연평균 9%대 성장률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들의 수치는 더욱 심각하다. 전체 병원급 진료비는 전년 대비 0.7% 증가하는 데 그쳤고, 상급종합병원은 오히려 8.8% 감소해 2020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이른바 '빅5 병원'은 전공의 이탈과 수술 중단, 병상 운영 차질 등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총 급여 진료비가 약 14.4%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종합병원(5.9%)과 일반병원(10.2%)은 일정 수준의 증가세를 유지했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둔화 기조가 뚜렷했다. 의원급은 6.9%, 치과는 6.4% 증가했으며, 약국은 3.9%로 코로나19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한방병원은 첩약 시범사업 등 영향으로 13.9% 증가했으나,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정책적 해석의 여지는 있다.

이번 수가협상에서 활용되는 ‘SGR 모형’은 법·제도적 요인을 제외한 순수 진료비 증가율을 기준으로 유형별 협상 순위를 결정하는 구조다. 따라서 진료비 증가율이 낮은 유형일수록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따라 투입된 재정이 진료비에 포함되는지 여부를 두고, 공급자단체와 가입자단체 간 해석의 차이가 갈리고 있다.

병원협회는 상급종합병원 진료비 급감의 원인을 의정갈등에 따른 필수의료 기능 마비로 진단하며, 정책지원금이 모두 의료인력 유지를 위한 인건비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의원 폐업이 1,000건을 넘긴 현실을 근거로 낮은 수가와 고정비용 증가로 인한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약사회는 장기처방 증가와 약품 공급 불안정을 지적하며, 한의협은 한방병원과 한의원의 분리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각 공급자단체는 이번 협상에서 밴드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의협 협상단은 “진료비가 줄었으면 SGR 방식에 따라 밴드 인상 폭도 커져야 한다”고 강조했고, 약사회 역시 “유형 간 균형보다는 전반적인 재정 확대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치협은 “지금이야말로 재정 투입의 필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시점”이라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나 가입자단체는 이 같은 주장에 신중한 태도다. 밴드 확대가 곧 건강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재정 방어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2년간 건보료를 동결한 바 있으며, 정책가산이나 보장성 강화에 따른 진료비 증가분을 제외하고 순수 진료비 기준으로 판단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재정운영위원회 강도태 위원장은 최근 “지원금 반영 여부에 대한 원칙 설정은 필요하지만, 이번 협상에 반영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밝혀, 현 구조에서 큰 틀의 변화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건강보험 재정이 당기수지 4년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누적 준비금도 30조 원에 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밴드 인상이 보험료 인상과 직결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 밴드 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상승해왔다. 2018년 8,234억 원이던 밴드는 2025년 수가협상에서 1조 2,708억 원으로 확대됐다. 의료계는 올해 밴드 역시 전례 없는 수준의 증액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진료비 증가율 하락이 공급자 탓이 아닌 외부 요인에서 비롯된 만큼,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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