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 형사면책 필요성 제기… “의사 특권 아닌 환자 보호 위한 제도”
형사 책임 부담에 필수 진료과 기피 심화… “국가가 의료진을 보호해야”
불가항력 사고 보상 확대 주장도… “형사처벌보다 공적 배상 시스템 필요”
필수의료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는 가운데,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 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의료계와 법조계는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사들이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도록 형사 책임 부담을 줄이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사 특권'이라는 비판 여론이 제기되면서 제도화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19일 서울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의료책임제한법 필요성과 문제점’ 세미나에서, 사단법인 착한법 만드는 사람들과 의료계 인사들은 의료사고를 형사사건으로 다루는 현재의 법적 구조가 오히려 의료서비스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한의사협회 김성근 대변인(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교수)은 "의료행위 중 발생하는 사고로 형사처벌을 받는 구조는 의사들을 진료 현장에서 내몰고 있다"며, "특히 필수의료 분야는 사명감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영역인데, 언제든 형사 고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결국 기피현상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산부인과에서 태아가 사망한 사건 등으로 의료진이 법정 구속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소청과·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 지원율은 급감했다.
김 대변인은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은 의료사고 발생 시 국가가 우선 배상하거나 민사 책임 중심으로 처리한다. 형사 책임은 중대한 과실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환자를 살리는 의료진을 보호하는 구조를 갖춘 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덧붙였다.
의료계가 제시하는 대안은 ‘의료사고특례법’ 도입이다. 이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아닌 이상 형사책임을 면제하고, 대신 국가가 운영하는 보상기구나 배상조정 시스템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김 대변인은 “이는 특권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직업군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환자단체 등은 해당 법안을 ‘의사 봐주기’로 인식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김 대변인은 “이 제도는 의사들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방어 진료 없이 책임 있는 진료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하며 “현 상황은 오히려 의사들이 수술 자체를 꺼리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의사뿐 아니라 법조계에서도 현행 형사처벌 체계가 의료환경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법률자문단 소속 이준석 변호사는 "진료 중 발생하는 합병증이나 예측 불가능한 반응까지도 형사 책임으로 이어지는 현 구조는 의료인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형사 책임 회피를 위한 과잉 검사, 전원 조치, 고위험 환자 기피 등 이른바 '방어 진료'가 오히려 환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응급의학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처럼 리스크가 높은 진료 분야에서는 인력 유출로 인한 진료 공백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상임조정위원 이동진 변호사는 보다 실질적인 해법으로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공적 보상 확대를 제안했다. 그는 “의료사고 분쟁의 상당수는 과실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과실 사고에 대한 사회적 보장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재 산부인과에서의 분만 사고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무과실 보상 제도는 향후 소아과 등 필수의료 분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는 “물론 재정적 한계는 있지만, 사망이나 중증 장애 같은 심각한 결과에 대해선 국가가 책임지는 구조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오는 2025년 3월 발표 예정인 제2차 의료개혁 실행 방안에서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아동보상심의위 직제 개편 등 종합적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성근 대변인은 “의사들이 스스로를 ‘형무소 담장을 걷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할 만큼 두려움에 내몰린 현실은 결코 정상적일 수 없다”며 “의료사고로 인해 현장을 떠나는 유능한 의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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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훈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