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조무사에 예방접종 맡긴 소청과 의사… 법원 “위법은 명백, 선고는 유예”

의료법 위반 인정되나 “반성 태도·피해 회복 노력 등 참작”
예진 없이 접종 지시… CCTV 영상이 핵심 증거로 작용
벌금 100만 원 형 선고 유예… 위법성은 “가볍지 않다” 판단

의사가 아닌 간호조무사에게 예방접종을 단독으로 맡긴 소아청소년과 의사에게 법원이 의료법 위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법원은 행위의 위법성은 분명하지만, 피고인의 반성과 피해 회복 노력을 함께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부산지방법원은 지난 6월 12일, 부산 연제구 소재 소아청소년과 의원의 원장 A씨에게 벌금 100만 원의 형을 선고하면서 형법 제59조에 따라 선고를 유예하는 결정을 내렸다. 의료법 위반 형사사건에서 이례적으로 형을 면하게 된 배경에는 사후 대응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사건은 지난해 1월, 환자 대기시간이 급증한 진료현장에서 발생했다. 진료가 몰리던 당시, A씨는 간호조무사 C씨에게 어린이 환자들의 예방접종을 단독으로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C씨는 의원에서 진료 및 간호 보조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의료법상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자격은 없었다.

실제 접종은 6세 여아와 4세 남아에게 각각 테트락심과 MMR 등 혼합백신을 투여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의사 A씨는 병력 청취나 진찰 없이 보호자가 작성한 예진표만을 근거로 접종 결정을 내렸고, 간호조무사에게 직접 시술을 맡겼다. 이는 의료인이 아닌 자에게 의료행위를 위임해서는 안 된다는 의료법 제27조 제5항에 저촉되는 행위다.

검찰은 이를 의료법 위반으로 판단해 A씨를 기소했고, 재판 과정에서 경찰 수사자료, 예방접종 문서, CCTV 영상 등이 증거로 제출됐다. 특히 접종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CCTV 영상은 피고인의 지시 및 의료행위 위임 사실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가 의료법상 명백한 위반임을 인정했다. 다만 판결문에서 “위법의 정도가 가볍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 측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점, 이후 진료 과정에서 유사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한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또한 피고인의 연령과 생활환경, 사건 경위, 반성 정도 등을 감안해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선고유예는 일정 기간 형을 내리지 않고 유예한 상태로 두는 결정으로, 이 기간 중 추가 위반이 없을 경우 전과로 남지 않게 된다.

이번 판결은 의료 현장에서 인력 부족과 업무 과중을 이유로 의료법상 행위 주체의 경계를 흐리는 일이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이 따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 사례로 해석된다. 법원은 “책임은 가볍지 않다”고 강조하면서도, 단순 처벌을 넘어 개선의 여지를 남긴 점에서 주목된다.

<저작권자 ⓒ 의사나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